동두천 살리기┃ 그라피티 활용 도시재생·브랜딩 전략
동두천은 락음악의 발상지이자 그라피티 1세대 출발지
그라피티로 도시정체성을 강화하고 도시재생으로 연결
경쟁력 있는 도시는 지자체의 노력과 주민 적극참여로 만들어져
그라피티를 잘 활용한다면 유동인구를 쉽게 끌어들일 수 있을 것
동두천은 미군으로 인해 형성된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식 문화가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들어왔으며, 지역이 안고 있는 특수한 환경으로 인해 동두천만의 문화콘텐츠가 만들어진 곳이다. 락 음악을 가장 먼저 전파하였고, 이어 힙합열풍이 불기 전에 그라피티(Graffiti)가 가장 먼저 유입되었던 도시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라피티의 맥락이 생길 수밖에 없고, 또한 이국적인 동두천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그라피티가 잘 어울리는 도시이다. 따라서 동두천에 그라피티를 적용하여 락 음악과 함께 구도시를 재미있게 변화시켜나간다면, 정체성 강화를 통해 도시재생의 기초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음은 동두천 발전전략을 연구했던 임병우 교수의 ‘도시재생 및 동두천 브랜딩 전략으로서 그라피티 활용 방안’ 연구를 중심으로 동두천의 새로운 도시전략을 조명한 글이다.
■ 임병우 (산업디자인전공 교수)
후드건을 쓰고 도시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던 젊은이들이 도시곳곳의 벽면에 그려낸 그림들, 기호들, 그리고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쏟아낸 언어의 흔적들이 주류 예술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저항정신과 과감한 표현으로 세상 사람들과 소통을 원했던 거리의 아티스트들이 남긴 그라피티(Graffiti)는 오늘날 예술작품이 되었고, 그것이 남겨진 장소는 이제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다. 뉴욕에서 시작된 그라피티는 이제 전 세계 주요 도시에 스며들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홍대 주변을 비롯한 젊음이 있는 장소에는 그라피티가 눈에 띈다. 그리고 주목을 받는다. 우리나라에 미국식 문화가 가장 먼저 들어왔고, 국내 그라피티 1세대의 출발지가 되었던 동두천. 그라피티를 통해 이제 동두천도 주목을 받을 필요가 있다.
동두천은 미군이 주둔하면서 탄생하고, 그들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동두천” 하면 즉각적으로 미군이 연상될 만큼 미군이라는 요소는 동두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크나큰 요소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동두천의 미군은 부정적으로 인식되어 있는 편이지만, 도시의 문화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편이다. 동두천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현장이다.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안보 요충지가 되고, 국익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동두천 주민들이 희생했던 역사적 현장이었으며, 그로 인해 많은 이야기가 담긴 장소가 동두천이다. 동두천 구시가지는 아직도 1970년대의 모습으로 남아있지만, 한편으로는 동두천만의 독특한 문화콘텐츠가 담긴 곳이기도 하다.
동두천의 문화콘텐츠는 우선 락 음악부터 꼽을 수 있다. 동두천은 한국 락 음악의 발상지로 불린다. 그 이유는 한국 최초의 락 밴드인 신중현의 ‘ADD4\'가 결성되어 국내에 처음 락을 알린 곳이 바로 동두천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70년대에서 80년대까지 많은 락 가수들이 동두천 일대의 클럽을 무대로 음악활동을 하였다. 1999년 출범한 동두천 락 페스티벌은 연간 방문객 10만여 명을 기록하며 현재 한국 락 페스티벌 중에서 가장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락 음악이 동두천에 뿌리를 내린 것은 미군의 주둔에 따른 문화적 영향에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60~70년대 당시 아직 락 음악을 수용할 수 있는 토양이 형성되지 않았던 우리나라에서 미군부대는 그것을 수용하고 소비할 수 있는 시장으로서, 이문화 전파의 매개체 기능을 하는 곳이기도 했다.
락 음악은 전쟁과 억압에 대한 반항과 자유를 갈망하는 태도가 담긴 비판적 음악이다. 동두천은 전쟁으로 인한 그늘진 역사를 안고 있는 도시로서, 락 음악의 비판적 정신이 담긴 문화콘텐츠가 있는 도시이다. 따라서 동두천락페스티벌은 그늘진 과거의 기억을 예술로 승화하여 창조적인 미래를 만들어내는 소중한 도시 문화자산으로 평가된다.
한편 동두천에 락 음악이 전성기를 누리는 바깥의 다른 한 축에서는 또 다른 이문화 요소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시대가 변하면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도시의 문화가 바뀌고 예술도 달라진다. 동두천의 경우도 이러한 흐름을 따라 문화콘텐츠의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70~80년대의 동두천 주류 문화가 락 음악을 중심으로 한쪽으로 펼쳐졌다면, 80년대를 기준으로, 이후로는 그라피티도 나타나면서 매체의 변화가 시작된다. 90년대 국내에 힙합문화와 함께 그라피티가 유입되면서 음악과 미술이 함께 어우러지는 등 대중문화의 양상이 달라지는데, 그 시작의 한 축에 미군이 있었다는 것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그라피티 1세대가 동두천에서 시작되었다는 데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그라피티의 개념은 고대 미술의 동굴벽화에서부터 기원을 찾을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이해하는 그라피티는 산업의 발전과 함께 도장을 위한 에어 스프레이 페인트가 시중에 나돌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나타난다. 1970년대에 나타난 뉴욕 지하철의 낙서들은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그라피티의 개념으로서, 그것은 협소한 의미를 갖는다. 1970년대 화려한 뉴욕 도시 이면의 빈민가에서 젊은 흑인들의 소외감을 회화의 형식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그라피티이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미국 필라델피아와 뉴욕에서는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한 새로운 예술적 움직임으로써 그라피티가 나타난다. 그 태동기에 ‘Taki183\'이라는 ‘태그(Tag)\'가 처음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다. 태그란 그라피티에 써넣은 닉네임을 말하는데, Taki183은 지하철 내부 벽면 여기저기에 마커로 씌어져 수없이 많이 나타났다. 그것이 화제가 되면서 New York Times가 1971년에 기사를 다뤘다. 이후 비슷한 행위가 뉴욕시 전역에 번졌으며 방식도 다양해져 스프레이 페인트가 등장하고, 마침내 그라피티 라이터들의 집단이 생겨났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그라피티는 뉴욕 도시의 인상과 분위기를 만드는 중요한 한 요소가 되었다.
뉴욕에서 시작되었던 그라피티는 전 세계 도시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은 현재 뉴욕과 로스엔젤레스, 런던과 파리, 베를린과 로마, 바르셀로나와 상파울로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거리미술을 펼치고 있다. 수많은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의 활동 결과는 도시의 또 다른 볼거리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뱅크시(Banksy)를 꼽을 수 있다. 뱅크시는 런던을 배경으로 주로 활동을 하는데, 그가 남긴 그라피티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이 찾을 정도이다.
국내에서 그라피티는 1990년대 힙합문화의 국내 유입과 함께 시도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국내 힙합문화의 도입은 음악적 시도부터 시작되었고, 90년대 중반 이후, 외국 영화 속이나 국내 유명 힙합가수들이 외국에서 찍어온 뮤직비디오 배경 속에서 그라피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한 이태원 부근에서 주한미군들이 태깅을 하면서 국내에서도 그라피티가 작업되기 시작했다. 90년대 중반을 지나 힙합 열풍이 휘몰아치면서 국내 그라피티에도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홍대 주변에 힙합클럽이 하나, 둘 생기면서 언더그라운드 힙합 아티스트들이 생겨났고, 힙합문화를 즐기던 이들이 스프레이 캔을 잡기 시작했다. 태거의 수가 늘어나면서 한강 1문 지하보도 등에 빼곡히 그림을 그리게 되었으나, 현재는 한강 1문 지하보도에 모든 작업 활동이 금지되었으며, 지난 2004년 12월 모든 작품이 철거된 상태다.
그라피티는 현대인의 과시욕과 표현본능으로서 현대사회가 낳은 또 다른 장르의 예술로서 인간표현의 욕구를 대변하는 예술의 형태로 오늘날 그 자리를 잡아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국내 일반인들에게는 그라피티 예술성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그라피티 창작이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그나마 홍대 주변과 신촌 굴다리 벽면, 올림픽공원 등 젊음이 있는 장소에서 제한적이나마 시도되고 있고 최근에는 동두천 보산동에도 그라피티가 늘어가고 있어 그라피티의 발전 가능성을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라피티의 문화적 특성과 예술적 위상, 그리고 국내 유입과정 등을 봤을 때, 동두천은 우리나라 그라피티 1세대의 출발지로서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라피티를 통해 동두천의 도시정체성을 강화하고 이를 도시재생으로 연결시켜보고자 가능성을 알아봤다. 2013년 10월 한 달간, 동두천 관내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동두천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는지, 무엇이 동두천의 정체성을 나타내는지 자유롭게 말하도록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인터뷰에 응한 학생들은 동두천의 이미지에 대해서 부정적인 답변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라피티에 대해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특히 동두천의 정체성이 잘 살아난다는 적극적인 응답이 많았다.
도시의 정체성 측면에서 동두천을 살펴보면, 도시정체성을 나타내는 요인은 주로 동두천중앙역을 기준으로 북쪽 구시가지에 있고, 남쪽에는 신도시 상업지역과 아파트 형식의 주거단지 외에는 특별한 정체성 요인이 없어 보인다. 향후 미군공여지 활용에 따른 동두천시의 큰 변화를 예상했을 때, 구시가지는 미래의 발전요인과 더 근접하고 있어 그라피티를 잘 활용한다면 유동인구를 쉽게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따라서 구시가지에 대해서는 정비사업과 함께 그라피티 거리조성과 같은 문화사업 등 도시재생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여 동두천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장소 가치를 높여 향후 변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도시재생은 대도시 지역의 무분별한 외부 확산을 억제하고, 쇠퇴한 도심지역에 대한 인구 및 산업의 회귀를 촉진하며, 재활성화를 모색하기 위한 것으로, 기존 도시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사회적?경제적 문제를 치유하기 위한 모든 행위를 말한다. 도시재개발, 재건축 등을 통한 물리적 환경중심의 도시정비가 환경개선이라는 최종 결과에 주목했다면, 도시재생은 지속가능한 도시 커뮤니티를 보전하고 고양하기 위한 과정적 산물을 중시한다. 따라서 쇠퇴하고 있는 기존 도시에 새로운 기능을 도입함으로써 정체성을 가지게 한다. 동시에 물리적, 환경적, 경제적, 생활?문화적으로 재활성화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예술 문화를 이용한 도시재생사업이 주목을 받고 있는데, 장소와 맥락에 따라 다양한 방법을 이용한다. 영국 런던의 테이트모던(Tate Modern), 스웨덴 말뫼의 현대미술관(Moderna Museet), 핀란드 헬싱키의 카펠리(KAAPELI) 등의 사례에서는 방치된 기존의 건축물을 용도 변경하는 방법을 이용하였고, 세계적인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여 공간을 바꾼 스페인의 빌바오, 영국 문화·예술 도시, 게이츠헤드 등과 같은 사례에서는 예술·문화 공간을 도입하는 방법을 이용하였으며 그리고 프랑스 리옹 사례에서는 벽화마을을 만드는 방법을 이용하였다. 이 중에서 벽화를 이용한 도시재생 사업은 민관이 함께 참여함으로써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고 있어 특히 주목을 받고 있다.
프랑스 리옹마을의 벽화 프로젝트는 2009년 한 해에만 8,2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했던 성공적인 사례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전국에서 벽화마을 프로젝트가 인기를 끌었다. 부산에서는 2007년 안창마을 벽화사업이 성공을 거두자 벽화마을이 40여 곳이 생겨날 정도로 벽화마을 만들기 붐이 일었다. 부산뿐만 아니라 서울의 이화동 벽화마을, 수원 화성 행궁동 벽화마을, 청주 수암골 벽화마을, 전남 여수 고소동 벽화마을, 경암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부산 감천 문화마을 벽화 등 벽화마을 프로젝트는 우리나라 도시재생사업의 중요한 수단이 되어가고 있다. 현재 벽화는 공공미술을 대표하는 매체로 다양한 부분에 적용되며 특히 쇠퇴해가는 도시 골목의 경쟁력을 살리는 새로운 문화관광 상품으로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이다.
벽화를 이용한 도시재생사업이 성공을 거두게 되고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 연계산업 활성화 등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하여 주민들의 사생활이 침해를 받고, 상업지역으로 변질, 도시재개발과 도시재생 사이에서 민관의 입장 차이로 인한 갈등이 생기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게 나타나고 있다. 지역주민의 사생활 침해와 소음으로 인한 피해, 기관과의 갈등이 고조에 달하자 불만의 표시로 일부 주민들이 벽화를 훼손하는 사례가 최근에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화동 벽화마을, 수원 화성 행궁동 벽화마을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러한 사례에서 나타나는 벽화마을 사업의 부작용과 경직성을 봤을 때, 환경미화 차원의 벽화 사업을 통한 도시재생에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된다. 또한 유사한 접근방식으로 인해 도시 간 차별성이 없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이러한 면에서 흔히 일컫는 그라피티는 동두천의 도시정체성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도시재생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라피티가 최근 예술의 한 장르로 당당히 인정받으며 미술관의 전시작품으로 초대되고 있지만, 그라피티는 여전히 거리의 미술로서 의미를 유지하고 있고, 거리의 미술은 언제나 자유로운 위치에 있어 보존을 둘러싼 경직관계에서 벗어나 있다. 그라피티는 벽화와 다르게 작가의 내면세계가 강하게 표출되어 나타나며 자유와 즐거움의 욕구를 배출하기 때문에 역동적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장소특정성이 중시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많은 도시에서 시도되었던 마을벽화와는 성격이나 접근방식이 다르며 개성이 강조되고, 차별화가 이뤄진다.
타 도시와 다르게 동두천은 미군으로 인해 형성된 독특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식 문화가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들어왔으며, 지역이 안고 있는 특수한 환경으로 인해 동두천만의 문화콘텐츠가 만들어진 곳이다. 락 음악을 가장 먼저 전파하였고, 이어 힙합열풍이 불기 전에 그라피티가 가장 먼저 유입되었던 도시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라피티의 맥락이 생길 수밖에 없고, 또한 이국적인 동두천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그라피티가 잘 어울리는 도시이다. 따라서 동두천에 그라피티를 적용하여 락 음악과 함께 구도시를 재미있게 변화시켜나간다면, 정체성 강화를 통해 도시재생의 기초를 만드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동두천만의 도시 정체성이 강화되기 위해서는 자유로움이 있고 장소특정성이 중시되는 그라피티와 같은 독특한 스트리트 아트의 적용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본 연구에서는, 그라피티를 활용하여 도시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도시재생으로 연결시키는 도시재생 및 동두천 브랜딩 전략으로서 그라피티 활용 방안에 대해 논의해보았다. 그라피티가 어떻게 동두천의 정체성과 연결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기 위해 동두천의 문화자산을 조사해보고, 실제 적용 가능한 현장도 조사해보았으며 그리고 관내 대학에 다니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인터뷰도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그라피티를 동두천의 도시 문화콘텐츠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제안하고, 기대효과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본 연구에서 제안하는 그라피티 활용은 동두천이라는 지역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타 도시와 차별화 된 개성 있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방안이다. 경쟁력 있는 도시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뿐만이 아니라 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모두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