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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모델' 통해 남북평화공존 틀 모색했다
관리자 김도희 작성일 2017.09.27 조회수 100 T 트위터 F 페이스북 인쇄

아일랜드 모델’ 통해 남북평화공존 틀 모색했다

신한대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 주최, 아일랜드 국제학술회의 성황

평화 프로세스와 경계의 역동성: 아일랜드와 한반도주제 토론

국내·외 언론 큰 관심, 현지에서 회의 르포경계의 역동성에 주목

최완규 원장 평화공존의 길이야말로 한반도가 가야 할 유일한 길


신한대학교가 경기도와 공동으로 아일랜드에서 주최한 탈분단 문제 국제학술대회가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막을 내렸다. 신한대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원장 최완규·신한대 석좌교수) 주관으로 918, 19일 이틀 간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얼스터 박물관에서 평화프로세스와 경계의 역동성: 아일랜드와 한반도를 주제로 열린 국제학술회의는 폭력과 테러로 얼룩진 분쟁의 땅이자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의 경계를 허문 평화프로세스 결실의 현장에서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더욱 큰 관심을 모았다.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은 2015년 광복 70년과 분단 70년을 맞아 설립, 그동안 두 차례의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남북관계를 경계의 관점에서 평화공존의 틀을 모색한데 이어 이번에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통해 평화를 정착시키고 있는 아일랜드에서 평화공존의 해법을 찾는 또 하나의 성과를 거두었다




국내외 언론도 이번 국제학술회의 중요성에 주목, 아일랜드 벨파스트의 대표적인 일간지 아이리쉬 타임즈(THE IRISH TIMES)를 비롯해 국내 일간지 한겨레가 회의에서 발표한 기조연설과 토론을 현지 르포형식으로 크게 보도하고 중앙일보는 현지 특파원칼럼으로 한반도 위기와 북아일랜드의 평화프로세스를 비교 분석했다.


학술회의를 주관한 최완규 원장은 통일 주장에 앞서 분단체제의 모순과 실체를 드러내, 역사 화해를 포함해 남북의 화해협력을 모색하고 평화와 공존 체제를 다져나가는 게 먼저라고 밝히고 최근 한반도에 군사적 위기가 고조되어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우려를 자아내고 있지만, 북아일랜드의 평화 프로세스가 브렉시트 이후 새로운 위기를 맞고 있으면서도 옛날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평화공존의 길이야말로 한반도가 나아가야 할 유일한 길이라고 지적했다. 최 원장은 또 이번 학술회의서 우리는 평화 프로세스, 협치, 권력공유의 경험을 전지구적 관점에서 비교해 한반도 평화공존의 방향을 모색했다고 밝히고 아일랜드, 중국-대만, 한반도 등 여러 사례를 통해 경계가 평화공존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학술대회에는 영국, 아일랜드, 일본, 대만의 저명한 학자들과 최 교수를 비롯한 국내의 전문가 등 31명의 학자가 참가했다. 회의는 세션 1: ‘비교의 관점에서 본 평화프로세스세션 2: ‘갈등전환과 권력공유라운드테이블 : ‘경계의 역동성과 평화프로세스세션 3: ‘경계를 넘어: 협력과 화해로 나눠 진행됐으며 해외의 석학이 아일랜드의 평화프로세스와 갈등극복과 관련된 내용을, 국내 학자들은 남북한 관계의 갈등 해결과 협력 방안 등을 발표하고 국내외 학자들이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아일랜드 섬과 한반도의 탈식민적 탈분단적 평화과정 비교하기라는 주제로 발표한 구갑우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아일랜드 섬과 한반도는 식민과 분단에서 매우 의미 있는 유사점이 존재한다고 지적해 주목을 끌었다. 발표에 따르면 구 교수는 일본의 식민정책학자인 야나이하라 타다오는 영국이 아일랜드를 식민지배한 것으로 모델로 삼아서 조선을 일본의 아일랜드로 불렀으며 조선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식민통치의 한 방식을 제안했다. 실제로 일본은 식민지 조선을 아일랜드처럼 자치와 독립을 부여할 것인가, 아니면 스코틀랜드처럼 병합할 것인가를 놓고 저울질 했다. 구 교수가 지적한 또 다른 유사점은 남한의 헌법 3조에 명시된 영토조항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이 조항은 남아일랜드인 아일랜드공화국의 헌법에도 그대로 존재한다. 구 교수는 남북 아일랜드가 통일과 연합 내지 연방을 상상하는 과정은 탈분단을 추구하는 우리에게도 유의미하다고 강조했다.


평화과정과 경계의 역동성을 주제로 발표한 장경룡 광주여자대학교 교수는 남북관계는 만성적 갈등, 숙적 관계, 전략적 대립 속에서 정책결정자의 인식, 제도화된 의지, 편향된 대처 등으로 분쟁적인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고 남북한 모두 통일문제에 집착하기보다 먼저 갈등해소, 교류와 협력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탈분단경계문화연구원 연구진


원장 최완규(신한대 석좌교수)

동아시아 공간비교 연구센터 / 북한 일상문화 연구센터장 남영호(신한대 교수)

초국경 네트워크연구센터장 박소진(신한대 교수)

연구위원회

·김주연 ·류현욱 ·이철수 ·장형성(이상 신한대학교 교수)

국내연구자문위원

·김누리(중앙대학교 교수) ·김동세(고려대학교 교수) ·김성경(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김현미(연세대학교 교수) ·도진순(창원대학교 교수) ·박배균(서울대학교 교수) ·서정민(연세대학교 교수) ·이기호(한신대학교 교수) ·이문영(서울대학교 교수) ·이수정(덕성여자대학교 교수) ·이정철(숭실대학교 교수) ·정병호(한양대학교 교수)

해외연구자문위원

·권헌익(케임브리지대 교수, 영국) ·데이비드 뉴먼(벤구리온대 교수, 이스라엘) ·아키히로 이와시타(와세다대 교수, 일본) ·폴 라이어(캘리포니아대 교수, 미국)

운영자문위원

·김선정(아트선재센터 부관장) ·김성오(한국협동조합창업경영지원센터 이시장) ·김영달(미래산업 대표) ·윤여준(전 환경부장관) ·이재술(딜로이트 코리아 회장) ·임명진(갈리리교회 원로목사) ·전철호(개성상사 사장) ·전태준(한미교육위원단)

해외협력기관

·일본 홋카이도대학교 경계연구소

·일본 와세다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 몽고·중앙아시아 연구원

·아일랜드 트리니티 칼리지 에큐메닉스 대학

·국립대만대학교 중국학연구소


국내외 언론이 본 탈분단


한겨레 보도


벨파스트에서 열린 평화 프로세스와 경계의 역동성: 아일랜드와 한반도컨퍼런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열린 아일랜드와 한반도국제학술회의



한 때 세계에서 가장 격렬한 분쟁지였던 벨파스트 시내의 아침 등교길은 여느 도시와 다를바가 없는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91713시간 반의 비행 끝에 런던을 거쳐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 도착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벨파스트는 농촌마을들에 둘러싸여 온통 초록이었다. 그 가운데는 축구장도 한 몫을 했다. 축구에 대한 열기는 벨파스트 조지 베스트공항에서도 느낄 수 있다. 조지 베스트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 프리미어 리그의 유명한 축구선수였다. 저녁 무렵의 벨파스트 시내는 전날 비가 온 뒤 갠 탓에 높고 푸른 청량한 가을날씨를 보였다. 1년에 하루 이틀 있을가 말가한다는 말이 실감나지 않았다. 숙소로 가는 길에 다소 흉물스럽게 보이는 조선소의 거대한 타워크레인 골조가 눈에 띄었다. 나중에 1912년 침몰한 당시 세계 최대규모의 호화유람선 타이타닉이 벨파스트에서 건조됐다는 얘길 들었다. 침몰 100주년이 되는 20123월 이 조선소 옆 부둣가에는 타이타닉 박물관이 세워져 관광명소가 됐다.

 한 때 세계에서 가장 격렬한 분쟁지였던 이 벨파스트의 얼스터 박물관에서 918일과 19일 이틀 동안 신한대 탈분단 경계문화연구원’(최완규 원장)이 경기도와 공동으로 컨퍼런스(국제학술회의)를 열었다. 주제는 평화 프로세스와 경계의 역동성: 아일랜드와 한반도. 컨퍼런스에는 북아일랜드 역사상 가장 큰 평화 시위를 이끌어내는 등 평화운동에 헌신해 197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메어리드 코리건 맥과이어(74)가 참석했다. 그는 국내 여성평화운동단체들과 국제적인 여성운동가들이 한반도평화를 위해 함께 조직한 비무장지대걷기(위민크로스디엠지)’에도 참여하고 있다. 또 기조연설은 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에 참여한 협상가이자 분쟁전반에 관여해온 학자이자 정치적 활동가인 션 파렌 전 북아일랜드 자치부 장관이 맡았다.



아일랜드의 식민과 분단-피의 투쟁과 보복의 악순환

 수백년간 영국의 식민지 상태였던 아일랜드는 1922년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이 아일랜드 자유국의 설립을 계기로 아일랜드 섬도 남북 분단의 길을 가게 된다. 남부 아일랜드의 아일랜드 자유국1949년 영연방을 탈퇴해 아일랜드 공화국으로 독립했다. 분단 이후 아일랜드 섬은 한반도처럼 전면전을 겪지 않았으며, 남북의 대립도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북 아일랜드는 달랐다. 북 아일랜드에서는 종교적인 갈등이 중첩되면서 독립과 (남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둘러싸고 내란 수준의 갈등이 계속됐다. 일종의 내부분단으로 이중의 분단인 셈인데, 북아일랜드의 개신교 합병주의자와 충성파(인구의 약 60%)는 영국과의 통합을 지지했으며, 가톨릭 민족주의자와 공화주의자(인구의 약 40%)는 독립과 남부 아일랜드 공화국과의 통일을 지향하면서 충돌하는 정치적 균열구조가 고착됐다. 영국은 개신교 합병주의자를 지원했으며, 양 세력은 모두 무장 조직을 갖고 있었다. 특히 아일랜드공화군’(IRA)은 아일랜드섬의 통일을 목표로 무장투쟁을 전개했다. 총성은 그치지 않았다. 1972년 북아일랜드 데리(Derry) 시위에서 영국군의 무력진압으로 13명의 시민이 사망한 피의 일요일사건, 1981년 공화주의 민병대원들이 감옥에서 단식투쟁을 하다 죽음을 맞이한 비극적 사건 등 희생은 또 다른 투쟁으로 이어졌다.



종교적인 갈등이 중첩되면서 독립과 (남 아일랜드와의) 통일을 둘러싸고 내란 수준의 갈등을 보였던 북아일랜드


한반도와 아일랜드-탈식민과 탈분단의 평화과정 비교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연구해 온 구갑우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아일랜드 섬과 한반도의 탈식민적 탈분단적 평화과정 비교하기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그에게는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아일랜드 섬과 한반도는 식민과 분단에서 매우 의미 있는 유사점이 존재한다. 예컨대 그에 따르면 일본의 식민정책학자인 야나이하라 타다오는 영국이 아일랜드를 식민지배한 것으로 모델로 삼아서 조선을 일본의 아일랜드로 불렀다. 전후 도쿄대 총장까지 지낸 야나이 하라는 조선에 자치권을 부여하는 식민통치의 한 방식을 제안했다. 실제로 일본은 식민지 조선을 아일랜드처럼 자치와 독립을 부여할 것인가, 아니면 스코틀랜드처럼 병합할 것인가를 놓고 저울질 했다.

 또 다른 유사점으로 구 교수가 지적하고 있는 핵심 문제 가운데 하나가 남한의 헌법 3조에 명시된 영토조항이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이 조항은 남아일랜드인 아일랜드공화국의 헌법에도 그대로 존재한다. 아일랜드공화국 헌법 2조는 아일랜드공화국의 영토가 아일랜드섬과 부속도서, 영해로 규정하고 있다. 이 문제는 북아일랜드의 내부분쟁과 독립을 둘러싼 갈등에서 독립을 반대하고 영국과의 통합을 주장하는 신교 세력들이 개정을 요구하는 핵심 현안이 돼 왔다.

 구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남북 아일랜드가 통일과 연합 내지 연방을 상상하는 과정은 탈분단을 추구하는 우리에게도 유의미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굳이 통일이라는 말 대신 탈분단이라는 개념을 쓰고 있다. 그건 통일이 정치구호로 오염돼 있고 현실과 유리된 당위가 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통일에 앞서 평화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북한의 민족주의가 우리 안의 그들과 우리 밖의 그들을 배제할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아일랜드가 엄청난 희생 속에서 이뤄온 민족주의를 배제하고 갈등 행위자들의 공존을 추구하는 평화과정이 필요하다. ’남북이 평화공존의 길을 갈 수 있다면, 통일의 길은 일종의 열린 미래로 놔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아일랜드가 걸어온 길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심포지엄을 주관한 신한대 탈분단 경계 문화연구원의 최완규(67) 원장의 문제의식도 같다. 그는 북한연구학회 회장, 정치학회 부회장, 국제정치학회 이사 등을 거친 정치학계와 북한학계의 원로 가운데 하나다. 그 역시 한 인터뷰에서 통일이라는 말 대신 탈분단이라는 개념을 쓴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통일 주장에 앞서 강고한 분단체제의 모순과 실체를 드러내, 역사 화해를 포함해 남북의 화해협력을 모색하고 평화와 공존 체제를 다져나가는 게 먼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 원장은 남북한의 이질성으로 인해 통일을 얘기할수록 더 크게 갈등할 수 있다고 본다. 그는 통일을 잊어야 통일의 길이 열린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 뒤 통일은 몇십년 뒤에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가까워진 남북 멀어진 통일의 역설인 셈이다.

 평화과정과 경계의 역동성을 주제로 한 이번 세미나에서 장경룡 광주여자대학교 교수가 남북관계에서의 갈등, 갈등해소, 협력에 초점을 두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장 교수는 남북관계의 본질을 다루는데, 그는 우선 이것을 만성적 갈등, 숙적 관계, 전략적 대립, 고질적인 갈등 관계 등 장기 갈등에 관한 주요 이론들을 통해 분석한다. 예를 들어 만성적 갈등, 숙적 관계, 전략적 대립, 고질적인 갈등 관계를 검토하며, 정책결정자의 인식, 제도화된 의지, 편향된 대처 등으로 인해 남북이 장기 분쟁적인 구조에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장 교수 역시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의 문제라는 접근 즉 통일이라는 관점 보다는 보편적인 개념인 갈등해결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한 모두 통일문제에 집착하기보다 먼저 갈등해소, 교류와 협력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918일 벨파스트의 얼스터 박물관에서 열린 평화 프로세스와 경계의 역동성: 아일랜드와 한반도라는 주제로 컨퍼런스(국제학술회의)에서 1976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메어리드 코리건 맥과이어(왼쪽 74)와 토론회 사회를 맡은 나종일 가천대 석좌교수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성 금요일 평화협정’-갈등 전환과 권력 공유

 한반도와 달리, 북아일랜드는 1998성 금요일협정’(일명 굿프라이데이협정, GFA)이란 평화체제에 도달했다. 이 협정의 핵심은 북아일랜드가 영국의 일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통일아일랜드가 될 것인가는 북아일랜드 주민 다수의 선택으로 이루어진다는 미래의 결정으로 미룬 데 있다. 마찬가지로 이 성 금요일협정은 남부의 아일랜드공화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 2조를 개정하는 계기가 됐다. 영토조항을 폐기하고 아일랜드섬에서 태어난 주민에게는 아일랜드인의 정체성을 부여한다는 내용으로 조항을 완화했다. ‘멀어진 통일인 셈인데, 그 대신 북아일랜드 내에서 갈등해 온 정치세력들간의 권력 공유(분점)와 남아일랜드(아일랜드공화국)와 북아일랜드 사이의 협력을 위한 제도적 장치에 합의함으로써 평화 프로세스의 토대가 만들어졌다.

 다극 공존형 권력 분점 정치 구조는 이 협정의 핵심이었다. 영국 리버풀 대학교의 조나던 텅교수는 북아일랜드의 다극공존형 권력 분점: 성공 혹은 실패?’라는 발표에서 이 핵심 합의가 평화 정착에 기여한 바를 평가하고 있다. 이 권력 분점의 합의는 연립 정부, 공동체에 따른 비례 대표, 상호 비토(거부권) 인정, 그리고 공동체 자치 등 4가지를 기본 틀로 진행됐다. 텅 교수에 따르면 다른 지역들에 존재했던 다극공존 체제에 비하면 북아일랜드는 성공 사례의 하나로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상태가 유지됐다. 권력 분점이 분쟁 당사자들로 하여금 평화협정에 조인하고, 공동정부 기구들과 공통의 정치과정에 힘쓰도록 설득하는 데 있어서 매우 유용한 도구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이를 가능하게 했던 요인들로는, 갈등하는 당사자들의 상호인정 및 흡수와 배제의 배제, 평화적 방법에 의한 평화에 대한 합의, 무장해제와 평화과정의 동시 진행, 미국과 유럽연합이라는 양심적중재자의 개입 등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텅 교수는 협정이 체결된지 내년이면 20년이 되는 시점에서도 정치적 분단이 약화되지 않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정당지지를 비롯한 여러 가지 지표들에 있어서 극명하게 분열된 두 개의 공동체는 아직도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폭력이 없다고 양극화가 바람직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아일랜드의 발표자들은 권력 공유 모델이 과도적인 방식의 분쟁관리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아일랜드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의 로빈 윌슨 교수는 그건 인권, 민주주의, 법치주의라는 보편적인 규범을 통해 추구해 나가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아일랜드의 평화프로세스가 한반도 보다 앞서 가 있는 건 분명하다. 평화 없이 통합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는 평화 프로세스를 넘어서를 고민하고 있었다.


벨파스트/ 글 사진 강태호 한겨레 평화연구소장 kankan1@hani.co.kr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politics/defense/811827.html#csidx3dd57b85d93d1159d715d5a581fa735


중앙일보 보도


[배명복 칼럼] 북아일랜드서 본 한반도 위기


브렉시트로 북아일랜드 평화
중대한 도전 직면했지만
과거로 회귀하는 데는 모두 반대
경계 인정하고 경계 넘어선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서
남북한도 교훈 얻어야


배명복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런던데리. 아일랜드 사람들은 데리라고 부른다. 런던데리에서 남서쪽으로 15쯤 가면 국경 마을 코시퀸이 나온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공화국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어디에도 경계를 알리는 표시는 없다. 양쪽을 잇는 4차로가 쭉 뻗어 있을 뿐이다.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국경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가 없다.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의 국경은 지도에만 있는 경계다. 500에 달하는 경계 없는 경계(borderless border)’를 넘어 사람과 물자가 자유롭게 오가고 있다. 양쪽을 연결하는 210개의 도로를 통해 매일 3만 명의 인력이 상대 지역으로 출퇴근한다.
 
 북아일랜드는 폭력과 테러로 얼룩진 분쟁의 땅이다. 아일랜드와의 통합을 원하는 가톨릭계 주민과 영국 영토로 남길 원하는 신교도 주민 간 유혈 분쟁으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1960년대 말부터 90년대 말까지 약 30년의 더 트러블스(The Troubles)’ 기간 동안 있었던 37000건의 총격사건과 16000건의 폭탄 테러로 3500명이 죽고, 5만 명이 다쳤다.
 
72년 런던데리에서 일어난 피의 일요일사건이 대표적이다.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평화행진에 나선 가톨릭계 주민들을 향한 영국군의 발포로 14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중상을 입었다. 90년 코시퀸에서는 아일랜드계 무장단체인 아일랜드공화군(IRA)이 주도한 차량폭탄 테러로 5명의 영국군이 숨졌다. IRA는 영국군에 협력한 부역자가족을 인질로 잡고, 그 부역자를 시켜 450kg의 폭발물을 실은 차량을 영국군 초소를 향해 돌진하게 했다.



테러가 테러를 부르는 피의 악순환은 98년 합의한 굿 프라이데이(Good Friday) 협정으로 종식의 전기를 맞았다. 그리고 2006년 체결된 세인트앤드루스 협정으로 본격적인 이행 단계에 들어섰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사이의 경계를 허문 것은 초인적 인내로 진행한 평화 프로세스의 결실이다. 그러나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브렉시트결정으로 북아일랜드 평화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했다. 브렉시트는 EU에 유예한 영국 주권의 회복, 곧 국경 통제와 관세 장벽의 복원을 의미한다.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와 EU 회원국인 아일랜드 사이에 다시 딱딱한 국경(hard border)’이 재건될 수 있다는 의미다. 검문소와 세관, 군인들의 초소가 국경을 감시하고 통제하던 평화협정 이전 상태로 회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난주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도인 벨파스트에서 경기도와 신한대, 아일랜드 트리니티대 공동 주최로 열린 국제 콘퍼런스에서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측 참석자들은 힘겹게 정착된 북아일랜드 평화에 브렉시트가 초래할 수 있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 큰 우려를 나타냈다. 브렉시트로 북아일랜드 평화가 위협받는 일은 없을 거라는 영국 정부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불안해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처럼 국경이 없는 상태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국경 통제를 회복하는 것은 서로 모순이기 때문에 현실적 해법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북아일랜드의 평화 프로세스는 영국계와 아일랜드계의 경계를 인정하면서도 대화와 상호 존중, 권력 공유를 통해 경계를 뛰어넘은 과정이다. 그 과정이 아직 완전하게 끝나진 않았지만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순 없다는 데 양측 모두 동의하고 있다. 테러에 지친 신교계와 가톨릭계 주민들이 더 이상 폭력은 안 된다는 컨센서스에 이르면서 평화 프로세스는 시작됐다. 사상과 신념의 차이를 떠나 전인적 인격체로 서로를 대하며 끈질기게 대화를 이어갔다.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의 핵심은 아일랜드 정체성, 영국 정체성, 아일랜드·영국의 이중 정체성 사이에서 갈등하고 반목한 북아일랜드인들에게 아일랜드나 영국 국적, 또는 아일랜드·영국의 이중 국적 중 하나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헌법적 권리를 인정한 점이다. 경계를 뛰어넘어 공존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한 것이다.
 
 감내할 수 없는 극단적 상황까지 간 것이 북아일랜드 평화 프로세스의 시작이었던 것처럼 폭발 일보 직전까지 온 한반도 위기 상황은 극적인 반전의 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제는 대화다. 서로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얼굴을 맞대야 한다. 누가 뭐래도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다. 한국을 배제한 채 김정은과 도널드 트럼프의 말싸움이 주먹싸움으로 비화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은 용납할 수 없다. 전쟁을 할 때 하더라도 그전에 최대한의 대화 노력은 있어야 한다. <벨파스트에서>



THE IRISH TIMES 보도


Korea can learn from Northern Ireland’s peace process

Histories of hurt and trauma link Ireland with two Koreas and may show way forward

Mon, Sep 18, 2017, 00:41

David Mitchell, Dongjin Kim


Two news stories simmered through the summer months, between which few people likely saw any connection. One was the crisis surrounding the Korean peninsula. The other was the Brexit negotiations and the unknown fate of the Irish Border.

At first glance, the issues seem as far apart as Strabane and Seoul. The borders in question could hardly be more contrasting ? Ireland’s, imperceptible; Korea’s, impregnable. But a closer look reveals some interesting similarities.

The modern histories of both Ireland and Korea have been shaped by colonisation by a larger, more powerful neighbour. Both have a bitterly contested past, and a legacy of mutual hurt and trauma. Both, in the late 20th century, experienced peace processes with some comparable elements but very different outcomes. Both remain divided.

Indeed, a little known fact in Ireland is that Koreans have been called “the East’s Irish” ? by early western missionaries and by contemporary commentators, including Francis Fukuyama ? due to cultural and historical parallels.

But in terms of conflict scholarship and policymaking, Ireland and Korea have rarely been set alongside each other. For Ireland, Israel-Palestine and South Africa have been the most frequent comparison cases. For Korea, divided Germany has offered the most obvious “model” ? a cold war creation in which estranged capitalist and communist parts successfully reunited.

However, interest in the Northern Ireland peace process is growing in Korea, especially among those who prioritise improved inter-Korean relations over political unification. Just as it does in Ireland, the idea of Korean unification as a peace solution raises a further, divisive problem: what type of unified state?


Civil society peacebuilding

Ireland circumvented this issue, pursuing an “agreed Ireland” with imaginative, interlocking institutions, mutual recognition of identities and constitutional reforms. These were overseen by strong British-Irish commitment and regional stability in the form of the EU, and given legitimacy by the Belfast Agreement and by grassroots civil society peacebuilding.

All of this may have some relevance to Korea where a coherent, sustainable, domestically and regionally supported peace process has failed to take root. As the recent crisis has shown once again, Korea is surrounded by powerful states with conflicting and changing interests. And, of course, there is the nature of the North Korean regime.

Decommissioning is not denuclearisation, but the two issues do bear resemblance in terms of the dynamics, perceptions and mutual anxieties surrounding their negotiation. North Korean denuclearisation has been made a precondition for talks, effectively excluding the regime. This makes progress extremely difficult.

In fact, given the history of American military intervention, and that, during the Korean War, the United States openly considered using nuclear weapons on North Korea, the latter’s determination to develop nuclear capability to guarantee its survival is not beyond reason.

As in Northern Ireland, and in every peace process, leadership is crucial ? the kind of leadership that can both reach out to opponents and reassure supporters, offering a compelling vision of the mutual advantages of transforming conflict. That leadership is lacking in the Korean situation. In the militarised and state-centric Korean context, avenues for civil society intervention are few.

Symbolic march

However, there have been bold initiatives in the past. Starting in the 1980s, South Korean and world ecumenical movements organised several meetings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n church leaders. From the late 1990s, South Korean NGOs worked on development projects in North Korea. These enabled the kind of people-to-people contact which is now so difficult but key to a sustainable peace process. In 2015, a group of international women activists, including Nobel Prize winner Mairead Maguire from Ireland, organised a symbolic march from North to South Korea.

Despite Brexit and the current political stalemate at Stormont, the Northern Ireland peace process is still considered internationally as one of the most successful in the world. Korea, too, has made significant steps towards peace in the past. Sharing experiences between peacemaking arenas which are, in different ways, still unfolding, may be a valuable source of learning and inspiration, enabling sharper understanding of the universal, and unique, challenges of resolving conflict.

Peace processes are not linear but winding, halting and uncertain. But the times of threat and setback are surely those in which talking, sharing and learning are most important.

Dr David Mitchell is assistant professor in conflict resolution and reconciliation and Dr Dongjin Kim is adjunct assistant professor at the Irish School of Ecumenics, Trinity College Dublin.

The Irish School of Ecumenics will host Peace Processes and Borders in a Changing Geopolitical Context: Ireland, Korea and Beyond in the Ulster Museum, Belfast today and tomor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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